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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생충, 계단이 상징하는 4가지 계급 코드

기생충은 아카데미 수상작답게 계급 갈등을 시각적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봉준호 감독의 걸작입니다. 그중에서도 계단은 영화 전반에 걸쳐 계층 구조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장치로 활용됩니다. 이 블로그 글에서는 기생충 속 계단이 사회적 계급을 어떻게 상징하는지를 4가지 방식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기생충 영화 한장면 박소담 최우식이 화장실에서 와이파이 번호 잡는 장면
기생충 영화중 한장면. 박소담 최우식이 집안 화장실에서 와이파이 잡는 장면

1. 계단은 사회 계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시각적 대비는 박사장 가족과 김가족의 주거 환경입니다. 박가의 집은 높은 언덕 위에 있어 긴 계단이나 오르막길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반면 김가네는 지면보다 낮은 반지하에 살아서 창밖으로 사람들의 발만 보입니다. 이 수직적 거리감은 단순한 공간 배치가 아니라, 특권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높은 곳에 자리잡는 전통적인 계급 구조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입니다. 김씨 가족이 박가에 갈 때마다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점은, 그들이 다른 세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2. 아래로의 움직임은 추락과 수치를 상징한다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는, 폭우가 내리던 밤 박사장 집에서 김씨 가족이 도망쳐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도시를 가로질러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며 점점 더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귀가가 아니라, 임시적으로 누렸던 특권에서 현실의 빈곤으로 되돌아가는 상징적 추락을 보여줍니다. 하강은 곧 상실과 수치, 그리고 무기력을 의미하며, 이는 관객에게 깊은 정서적 충격을 줍니다.

3. 숨겨진 계단은 보이지 않는 하층민을 나타낸다

영화의 전환점 중 하나는 박가의 집 안에 숨겨진 계단과 지하 벙커의 존재가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이 지하공간에는 수년간 숨어 지낸 한 남자가 존재하며, 그는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살아갑니다. 이 비밀 계단은 사회의 가장 아래에 존재하면서도 존재 자체가 무시당하는 '보이지 않는 계층'을 은유합니다. 박가가 안락하게 살아가는 바로 그 공간 아래에서, 또 다른 인간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설정은, 사회적 맹목성과 구조적 불평등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4. 계단은 허상에 불과한 사회 이동성을 상징한다

영화 내내 김가족은 박가에 취직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상승'하려 합니다. 그들의 계단 오르기는 처음에는 성공적인 듯 보이나, 결국 그 기반은 허약하고 불안정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를 통해 전통적인 '개천에서 용 난다'식 서사를 부정하며,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진정한 계층 상승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기생충 속 계단은 진짜 이동 경로가 아니라, 결국 추락으로 이어지는 착각의 장치입니다.

마무리

기생충의 진정한 위대함은 다층적인 서사 구조와 정교한 상징성에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평범한 건축 요소조차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활용합니다. 계단은 그저 상하로의 통로가 아니라, 계급, 권력, 환상을 시각적으로 언어화하는 장치입니다. 관객은 인물들과 함께 계단을 오르내리며, 자신이 속한 사회 구조와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총평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단순한 가족 드라마가 아닌,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빈부격차의 현실을 날카롭게 조명한 작품이다. 웃음과 긴장, 그리고 마지막의 충격까지, 이 영화는 내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반지하와 고급 저택이라는 극단적인 공간 대비였다. 같은 서울 안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두 가족 기택네와 박사장네 그들 사이의 간극은 단지 돈의 차이가 아니라 삶의 질과 인간 존엄성의 차이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비 오는 날, 박사장 가족에겐 그저 낭만적인 캠핑 취소의 하루였지만, 기택 가족에겐 집이 물에 잠기고 변기에서 오수가 역류하는 재난의 밤이었다. 그 장면은 가슴이 먹먹할 만큼 현실적이었다. '비는 누구에게나 내리지만, 그 영향을 받는 정도는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또한, 박사장 부인의 말투와 태도 속에 묻어 있는 '선을 지키는' 우월감도 인상 깊었다. 아무리 친절해 보여도 결국 그들의 친절은 철저히 '가난하지 않은 자의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선'은 절대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이 영화 내내 느껴졌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 '선'을 긋고 살아왔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